Camouflage, 이순종 / KR

1996.08.31 – 09.11

박영택 (금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래서 부유하는, 노마드적인 애매모호함이 그녀의 작업이다. 여기서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그 애매모호함을 더 한층 가중시킨다. 남성이 문화를 만들고 지배하고 군림하는 역사 속에서, 현실 속에서 그리고 미국과 한국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 여성작가로서 체득되는 다차원의 가중된 애매함을 차라리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이와 틈에서 세계와 현실을 보는 이는 일방적인 지시 체계와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을 의심스럽게, 결코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낯설게 느끼고 만난다. 진짜가 아닌 가짜로 이루어진 이 허구의 현실은 그래서 ‘위장’된 세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시각에 의해 모든 사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애매하게 위치해 있다. 이 작가가 만든 그릇 같기도 하고 전혀 그릇같지 않는 물건들을 보라. 군사용 기물과 군대에서 쓰이는 무늬, 문양, 색채 등에 관심이 있고 이를 응용해 그릇같은 것을 만들거나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큰 이미지에 담는데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다. 군사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들 혹은 병기고에 놓여진 여러 무기들이 보여주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를 응용해 만든 다양한 그릇들, 그릇 모양을 취한 이 매혹적인 검정색으로 덮여진 수 많은 용기들이 선반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 (흡사 군대의 사열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수 많은 인간군상을 암시하는)은 매우 흥미롭다.…………

…………이순종 작업의 묘미가 바로 그 지점을 재미있게,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가게 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 모두를 설명하기 곤란한, 애매한 늪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이 시대에 미술이 해낼 수 있는 지점, 그러니까 삶과 문화를 교란시키고 구멍을 내고 노마드적으로 모서리에서 발랄하게 관조하면서 나아가는 우리시대 미술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