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ouflage, 이순종 / KR

1996.08.31 – 09.11

박영택 (금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캐머플라지(camouflage)는 ‘위장, 은폐 혹은 눈가림하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종은 ‘캐머플라지/위장’에 관심이 많다.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 이후 귀국한 그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어떤 ‘틈’과 ‘사이’에서 생활한다. 당연히 그 틈새에서 사유하고 만들어낸 것이 이 작가의 작업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래서 부유하는, 노마드적인 애매모호함이 그녀의 작업이다. 여기서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그 애매모호함을 더 한층 가중시킨다. 남성이 문화를 만들고 지배하고 군림하는 역사 속에서, 현실 속에서 그리고 미국과 한국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 여성작가로서 체득되는 다차원의 가중된 애매함을 차라리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단순히 사물을 보고 제작하는 차원, 작업을 지탱시키는 미술관 자체에 놓여 있다기 보다는 그의 인생관, 삶에 대한 시각 자체에 더 한층 무겁게 드리워진 문제의식 같다. 어떤 사이와 틈에서 세계와 현실을 보는 이는 일방적인 지시 체계와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을 의심스럽게, 결코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낯설게 느끼고 만난다. 진짜가 아닌 가짜로 이루어진 이 허구의 현실은 그래서 ‘위장’된 세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급속한 현대화, 산업화, 근대화의 세례를 받은 한국의 현실은 상당히 기묘한 모습을 띄고 있으며 어느 면에서는 실종된 문화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가짜로 혼재되어 있고, 위장되어 있거나 가증스러운 아름다운 모조로 뒤범벅이 되어 있어서 낯설고 의아스러운 기묘한 모습, 전반적으로 조작되고 급조된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가 미국문화를 오랜 시간 접하고 나서 겪게 되는 문화적 갈등, 충격에서 오는 현상인 듯 한데 작가는 그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본다. 

 

이순종은 귀국 후 주한미군 내 대학에서 미술을 7년째 강의해오고 있다. 기묘한 완충지대 같은, 흡사 D.M.Z같은 이 병영은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기묘한 삶과 문화의 공간이고 나아가 병영이라는 남성들만의 공간이기에 여기서 여자로 겪는 체험이 그의 시각과 감성을 애매한 지점에 머물게 하면서 사물을 관찰하게 하는 것 같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그래서 희화적인 감성마저 부추켜 주는 이 병영에서 관찰하는 삶과 문화의 체험은 미국문화와 한국문화, 그리고 남성문화와 여성문화에 대해 상당히 흥미있는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는 실질적인 삶의 공간이 된 셈이다.

 

작가의 시각에 의해 모든 사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애매하게 위치해 있다. 이 작가가 만든 그릇 같기도 하고 전혀 그릇같지 않는 물건들을 보라. 군사용 기물과 군대에서 쓰이는 무늬, 문양, 색채 등에 관심이 있고 이를 응용해 그릇같은 것을 만들거나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큰 이미지에 담는데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다. 군사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들 혹은 병기고에 놓여진 여러 무기들이 보여주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를 응용해 만든 다양한 그릇들, 그릇 모양을 취한 이 매혹적인 검정색으로 덮여진 수 많은 용기들이 선반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 (흡사 군대의 사열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수 많은 인간군상을 암시하는)은 매우 흥미롭다.

 

관능적인 선과 매혹적인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뒤덮인 그래서 전적으로 시각에 적극호소하는 이 조각물은 복제품과 복제되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에 놓여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실제’와 ‘예술’의 차이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수많은 우리시대의 팬시공예품들의 장난스런 익살과 조화를 이루는 양식적 호응도 있는 이 창백한 ‘환영’들은 각종 병기들의 형태를 임의적으로 짜집기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병기’들이 바로 아름다움과 기능, 에로틱한 감상까지도 부풀려주는 대상이 되는 셈이다. 또한 팬시점 혹은 인테리어 소픔 가게에서 파는 치장된 그릇들을 흉내 낸 이 작업에서는 위선적인 아름다움과 낯설은, 독한 향수냄새처럼 피어오르는 사이비 미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속물 부르주아들의 교양, 문화를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같다. 특히 빈 용기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각 개인들은 무언가를 채우고 공간을 지닌 용기와 같다는 것, 사람들의 모습 또한 용기의 선과 모습을 닮아있다는 이야기다. 세라믹으로 뜬 손 역시 무언가를 감추고 담은 속성에 대한 은유이다. 병영이란 다름아닌 은폐와 위장의 속성을 지닌 것이기에 그 은유로서 손과 군용 담요나 캐머플라지 무늬가 함께 연결되어있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다른 사물들이 하나의 큰 이미지에 닿을 수 있는 가이다. 기계류는 너무나 기능적이라 아름답다. 어떤 꽃병들은 너무 예뻐서 징그럽다. 그릇보다 병기나 탱크를 볼 때 더욱 시각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릇들은 왜 요사스럽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작가노트)

 

손과 조개, 꽃병과 무기류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기물들, 캐머플러지 무늬와 하트 문양, 커다란 붉은 사가와 그릇들, 군용 담요와 끈적거리는 사탕, 관능적인 곡선을 지닌 그릇 류에 감싸고 있는 군대 문양들의 혼재는 기묘하게 남성 문화와 여성문화간의 간극과 틈을 일시에 스며들게 하고 교차시켜 그 판단을, 경계를 와해시켜 버린다. 가장 남성다운 문화의 응집인 군대가 실은 지극히 여성스러운 감성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이해해주는 시각, 그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 같기도 하다. 미묘한 완충지대에 놓여지고 설치된 이 작품들은 또한 관자 각자에게 사물에 대한 독특한 체험, 문화에 대한 체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체험을 맛보게 한다.

 

이순종 작업의 묘미가 바로 그 지점을 재미있게,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가게 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 모두를 설명하기 곤란한, 애매한 늪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이 시대에 미술이 해낼 수 있는 지점, 그러니까 삶과 문화를 교란시키고 구멍을 내고 노마드적으로 모서리에서 발랄하게 관조하면서 나아가는 우리시대 미술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