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움 자료집 - Eroticism21c  / KR

심포지엄 자료집

 

Eroticism 21c

 

일시_ 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장소_아트선재센터 지하 소극장

주최_ 김승호 미술연구소

 

 

한국에서 에로티시즘 작업을 한다는 것의 의미

 

글 이순종(참여작가)

 

이 글은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나의 작품에서 이미지화되고 그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적이고 작업에 기초한 개인적 견해이다. 때문에 다소 무리한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해 둔다.

 

1. 에로스는 나의 작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나의 작업은 직, 간접적으로 에로틱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왜 그럴까? 궁금하던 중에 이번 전시를 통해 이유를 규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성의 문제를 다룬 적도 없고, 사실 성에 그다지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분명 에로틱한 그 무엇이 항상 곁들여 있다면 나에게 에로스는 어떤 역할을 할까? 아마도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으로서의 성, 다시 말하면 성적 대상으로서의 성 혹은 성적 욕망을 자극시키는 표현으로서의 성이라기보다는 에로스의 근원적 의미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에로스에 관한 정의는 수없이 만다. 이성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구, 인간의 전 생명을 움직이고 증식시키는 위대한 힘, 혼돈을 질서화하는 원리, 완전을 향한 인간의 정신, 창조의 원동력, 사지를 이완시키고 정신을 손상시키는 마법의 화살 등.

 

그리스 신화로부터 프로이드, 그리고 여러 학자의 에로스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있겠으나 보편적인 의미로 에너지,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힘 혹은 에너지를 운용하는 원리라고 이해되며 그 에너지는 물론 성적 행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성적 행위가 반드시 암수의 교합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봄에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거나 비 온 후 산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은 내 안의 생명이 우주의 생명과 화합하는 것이고, 이것도 에로스의 작용으로 보인다.

 

에로스에 관한 다양한 댱상 중에 가장 흥미있고 나와 우리 사회의 잡단 감수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이는 설명이 있다. “정서적 테러리스트로서 이상하고 통제 불능한 감정을 부과한다. 장난을 좋아하고 보복하는 신, 버르장머리 없고, 화를 내는 경향이 있고, 신경질이 많다.” 마치 우리나라 민간 설화 가운데 사람을 골탕 먹이기 좋아하는 도깨비를 설명하는 듯하다. 토속신앙인 샤머니즘과 함께 현재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라 보며 나는 무속 신앙이 에로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사고방식, 나의 작업과도 어떤 면에서 관련이 있다.

 

 

2. 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에로스의 구체적인 예: 군사문화와 무속신앙

 

나의 작업에 관해 이미지의 원천을 보면 군사문화를 통해 힘 중심의 남성 집단을 희화화 하려는 의도와 신앙으로서의 무속이 깔려 있다. 나의 작품에는 가시적인 일관성이 없다. 내가 경험하는 상황에 따라 관심이 바뀌고 내용도 바뀐다. 그러나 항상 어딘지 에로틱한 이미지가 배어 나온다. 아마도 억압된 에로스가 비집고 나오는가 보다. 나에게 에로스는 반드시 성적 욕망이라기보다는 원초적 생명력이며 그것은 주로 우스꽝스럽다거나 신경질적인 성적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 이유는 내가 성을 억압하는 사회,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 권력 지향의 남성적 사회, 군사 문화가 제도화된 사회, 무속 형태의 미신적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쟁 직후인 1953년에 태어났다. 이런 시절에는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았고 군사 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두려웠다. 전쟁이 날까 두려웠고, 전쟁이 나면 잡혀가 강간이라도 당할까 겁이 나서 악몽을 꾸기도 했다. 1976년 졸업하던 해에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도미했는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국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때문에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겪지 않은 내가 군사문화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허위스럽기도 하다. 군사 독재에 저항한 경험이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1989년도에 귀국했다. 전쟁의 위험만 없을 뿐 나의 14년간의 미국 생활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음이 피폐해지고 이상한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을 농담(joke)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남부 텍사스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사막이 많고 황량한 지역이었다. 마치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지는 듯 몸과 마음이 건조했다.

 

몸과 마음이 메말랐던 탓인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충격적으로 훙미롭게 보였다. 황학동 시장 등 재래시장 구경을 자주 갔는데, 싸구려 잡동사니를 사는 취미가 생겼고 그것으로 오브제 작업을 많이 했다. 가정에도 작업에도 집중할 수 없는 마음의 분열은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곁눈질로 구경하는 태도를 만들어 낸다. 오브제 작업을 그런 점에서 적합했다. 시장 골목을 다니면 항상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음란하고 퇴폐스러운 느낌. 나는 건조하고 청교도적인 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그러한 음란한 기운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고 때때로 작품에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어 했다.

 

미8군에서 수년간 미술을 가르쳤는데 그때 군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미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군대라는 집단이 만들어 내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내가 보고 경험하는 주변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미 감정이 심했던 그때에 미군 부대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일이 정치적 이슈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나의 생에 가장 중요한 일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정면으로 부딪힐 만한 용기가 없을 때 슬쩍 우회하여 농담처럼 표현한다. 군사 문화를 희화화하는 것도 남성 권력 집단에 대한 농담이다. 군인들이 꼿꼿이 서서 사열 받는 모습, 온 몸에 힘주어 경례하는 모습, 큰 소리로 호령하는 모습들은 코믹하다. 군대 뿐 아니라 서열이 분명한 남성 위주의 집단 (특히 조폭 사회)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분위기가 때로 공포감을 자아내지만, 사람을 두렵게 하는 공포를 한참 들여다보면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남성의 고유한 집단인 군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군복을 벗기고 알몸만 남는다면 무엇이 가장 부각될까? 상상하면 정말 에로틱하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 벗기고 보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장이고 딱딱한 군화이고 허리에 찬 총이다. 전투 태세의 군인들을 에로틱하게 보려는 노력이 남성의 폭력성을 완화시키고 본래의 남성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장 해제된 군인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로나 무장 해제된 남성 집단을 생각하면 거대한 에로스 신이 떠오른다. 생명을 창조하는 위대한 신, 에로스.

 

나는 또한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로서의 종교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무엇에 더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무속이 현세적이기는 하나 현세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원인이 다른 차원의 세계라고 믿고 실제로 엑스타시 현상을 경험한다고 알고 있다. 무속은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역사성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측면이 있어 비난받을 요소가 많지만 분명 무속은 우리 사회를 활기차게 끌고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서양 문화의 뿌리인 기독교가 남성(아버지) 중시이라면 무속은 여성(어머니)적이다. 무속의 행위는 대부분 빌어주고, 먹여주고, 달래주고, 고쳐주는 일이다. 그 행위가 원초적인 어머지의 일이다. 그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 교접하여야 한다. 우리가 서로 인정하듯이 한국인에게는 신기가 있다. 신이 나야 일을 한다. 여기서 신을 굳이 연결하자면 에로스신이라고 생각한다. 열정, 생명력, 추진력의 에로스신, 그로나 다음어지지 않아 자주 충돌을 일으키는 한국적 에로스신.

 

풍요와 다산, 그리고 현세의 안녕을 기원하는 무속적 사고방식은 법이나 규제와는 거리가 멀어 우리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의 원인이기도 하며 에로틱한 행태로 표출된다. 나는 길거리를 걸으면서, 골목길을 다니면서 수많은 에로스의 흔적들을 본다. 빨갛고 노란 대형 간판들, 술 취한 거리, 성형 미인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심지어는 학교 근처에도 이는 러브호텔, 대로변에 가지런히 위치한 사창가(아이러니하게도 그 근처에는 경찰서가 있다), 마치 굿판을 벌인 듯한 도시. 이런 면들은 에로스의 여러 측면 가운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혼돈스러움의 양상이다. 내가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작업에 에로틱한 느낌이 묻어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요소를 많이 보고 흡수한 까닭이다.

 

나의 작업에 무기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무속 행위가 거리가 멀지만 나의 사고 방식은 무속적일 때가 많다. 무속을 미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신이 이기적인 반면 무속은 그 바탕이 이타적이다. 그 마음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고 여자는 적을 먹이면서 생명을 주는 신과 같은 마음을 갖는다. 우리 주변에 떠도는 이름없는 에로스의 분신들을 작업으로 끌어들여 이름을 지어주어 자각하게 해주고 싶다. 자각하면 분별력이 생기고 스스로 통제할테니.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무속행위라고 생각한다.

 

3.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에로티시즘의 양상

 

억압이 통제의 수단인 우리사회의 에로티시즘은 히스테리컬하고 정서적 테러의 양상을 보인다. 나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군사문화를 상징하는 왜곡되고 은유적인 성적인 표현들, 다층적인 의미의 불분명한 암시 등은 에로티시즘의 비틀린 모습이라 생각한다. 불법이나 규칙 위반으로 몰려지는 우리 사회의 에로티시즘, 어떻게 긍정적으로 접근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문제이다. 억압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해악을 인식하면 억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때, 우리 사회가 발산하는 문화적 에로티시즘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통로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일이다.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내가 어떻게 에로스와 관계 맺고 작품에 도입하여 에로틱한 이미지를 뿜어내는지 알 듯하다. 군사 문화와 무속, 핵심적이기보다는 주변적 요인을 통해 슬며시 에로티시즘에 접근한 나의 조심성이 드러난다. 역시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 문화 속의 에로티시즘은 예술적 측면에서 볼 때 불모지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