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Your Hair / KR

2011.10.06 – 11.30 / 코리아나미술관

_배명지 책임큐레이터

 

머리카락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며 풍부한 문화적 의미를 담지해 왔다. 동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 종교적 텍스트들이 머리카락으로부터 나오는 매혹과 마술에 대해 언급한다. 신체의 내부이자 외부에 위치하며,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물질이면서도 영적 의미가 부여되어 물질과 정신의 영역을 매개한다고 인식되어 온 머리카락의 양가성은 오랜 기간 예술과 문화의 풍부한 창조적 동인이 되어왔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뒤러(Albercht Durer) 등 르네상스 작가들이 표상한 이상화된 여성성과 힘의 표상으로서의 머리카락 이미지에서부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프리 라파엘 전파 작가들(The Pre-Raphaelites)의 휘감기는 머리카락 이미지에 대한 강박에 이르기까지 머리카락 표상에 대한 예술가들의 열정은 그것이 성과 관력, 유혹과 죄, 절망과 광기 등 인간 내,외연의 상징체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나텔로 (Donatello)와 카라바지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젠텔리스카 (Artemisia Gentileschi)와 클림트 (Custav Klimt) 등을 매혹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서 내러티브는 머리(카락)의 상실이 수반하는 권력의 상실, 거세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에 다름 아니다. 만 레이를 비롯하여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이 재해석한 메두사 이미지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부각된 여성 신체의 파편 이미지 등은 바로 머리카락을 둘러싼 풍부한 미술사의 원천에서 길어 올려진 것으로, 특히 언어와 경계를 초월하며 인간의 불명료한 의식에 관여하는 머리카락의 속성을 예쑬의 층위에서 내면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유전정보를 함푹한 역사와 기억의 총체이자 정체성을 강조하는 도구이며, 성과 인종, 민족과 계급, 지위와 권력의 지표인 머리카락은 사회 문화적 아카이브로서 20세기 이후 현대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예술매체로 기능하였다. 특히 삭발과 변장의 주요 미디엄으로서의 머리카락은 저항과 일탈, 자기변형을 시도하며 사회적 규범을 넘어서고 다층적이고 불안정한 인간 주체를 가시화하려는 20세기 후반 퍼포먼스 작가들의 주요 매개체였다. 90년대 후반 이후 머리카락은 인종과 민족주의,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과 연합하면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등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머리카락-털을 둘러싼 풍부한 미학적, 미술사적 담화들을 배경으로 한 <Show Me You Hair>전은 상징적 언어체계를 비껴가고 고유한 자아를 일탈하며 견고한 주체를 소멸시키는 머리카락의 비정형(formless)과 변이(transformation)의 속성에 주목하며, 또한 머리카락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함의 등을 통해 권력, 욕망, 정체성 ,인종, 지위, 환경 등 인간 삶의 의미체계들을 조망한다. 한국, 미국, 네덜란드, 독일, 태국 등의 15명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머리카락에 대한 소재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작업들 대신 머리카락의 지적 개념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인간 주체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 삶과 죽음의 메타포

머리카락은 시간의 흐름, 성장과 노화의 지표로서 인간 삶과 죽음에 관여한다. 이는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순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머리카락은 인간의 몸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속하는 어떤 것이다. 머리카락에서 혼과 정신의 의미를 찾는 것도, 과거의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 머리카락을 간직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특히 머리카락에 내재한 DNA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과 역사를 표상하며 머리카락의 상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고통 등 불안정한 인간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상처와 치유의 과정으로서의 머리카락을 은유한 작업, 개인의 가족사와 거기에 얽힌 삶과 죽음을 발언하는 머리카락 작업 등이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

 

 이순종의 <허스토리Herstory>는 작가 본인과 작가의 두 어머니-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둘러싼 개인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자신과 두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혼합하여 달 표면의 이미지로 재구성하고 이를 관의 형상을 한 오브제 가운데 서서히 돌아가게 한 이 설치 작업은 삶과 죽음, 상처와 치유, 갈등과 화해 등 작가 개인 삶의 내러티브를 내포하고 있다. 달의 형상으로 변모되고 융화된 세 여인의 머리카락은 그녀들의 역사에서 도출된, 대립을 품어내는 포용하는 여성성을 의미화 한다. 이순종은 2000년대 이후 회화와 설치, 오브제를 오가며 머리카락을 작업의 소재이자 주제로 삼아왔다. 전통 미인도의 얼굴에 메두사와 같이 우글거리는 머리카락을 극세필로 그려낸 <미인도>에서, 전시장 모서리에 흩뿌려진 머리카락 조각들로 섹슈얼한 여성신체 일부를 연상시키는 <산>과 무심히 놓여진 듯한 머리카락의 조각들이 직조해 내는 <매>, <난>, <국>, <죽> 등 그의 머리카락 설치작업은 비어있음(여백)과 있음(선)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동양화적인 감수성을 공유한다. 동시에 <매>, <난>, <국>, <죽>이 사군자로 통칭되는 남성문화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이듯, 그의 일련의 머리카락 작업은 여성으로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뒤집어 바라보려는 작가의 해체적 시각과도 상통한다.